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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랜드 미사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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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목요일 === > 우리는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둘 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을 뿐이다. >---- > 사이러스 W. 헤일 전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 《6분》(1996) 10월 27일 목요일은 위기의 정점이었다. 오전 유고랜드 국경을 따라 비행하던 루이나 공군의 RF-4 정찰기가 고랜드 영공을 1km 남짓 넘어섰다가 방위 지원단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조종사 대니얼 P. 오하라 소령은 숨졌고, 후방석의 정찰 장교는 낙하산으로 탈출했다가 고랜드 정부군에 붙잡혔다. 격추를 지시한 것은 사만간 매복 이후 경계를 최고 단계로 올린 현지 대공 부대 지휘관이었고, 크라슬리스크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보고를 받았다. 벨포르에서는 브래넌 의장과 공군이 즉각적인 보복 공습을 요구했다. 같은 시각 사르다 발사장에서는 위성 요격체 [[야스트레브]]가 발사 대기 태세에 들어갔고, 루이나의 조기경보위성이 사르다의 움직임을 포착하자 루이나 전략공군은 폭격기를 민간 공항으로 분산시켰다. 궤도협정이 금지한 요격 시험은 어느 쪽도 하지 않았지만, 협정이 발효된 지 다섯 달 만에 두 나라의 요격 전력은 다시 서로를 겨누고 있었다. 베인브리지는 공습을 24시간 미뤘다. 그날 저녁 헤일은 벨포르 시내의 한 호텔에서 사비에트 대사 빅토르 N. 사블린을 비밀리에 만났다. 두 사람은 사흘 전부터 직통선과 별도로 비공식 창구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블린은 카멘스키의 두 번째 제안을 가져왔다. 사비에트가 미사일을 철수하고 방위 지원단을 해체하는 대가로, 루이나는 고랜드 정부를 공격하지 않고 유고랜드의 전술 미사일 여단을 철수시킨다는 내용이었다. 헤일은 여단 철수를 공개적인 거래로 만들 수는 없다고 답했다. 유고랜드가 자신이 흥정의 대상이 된 것을 알면 동맹이 흔들리고, 베인브리지는 굴복한 대통령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정 무렵 두 사람은 합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초안에 합의했다. 같은 날 밤 크라슬리스크의 정치국 회의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바라노프는 RF-4 격추를 '정당한 영공 방어'라며 물러설 이유가 없다고 맞섰으나, 카멘스키는 미사일이 남아 있는 한 다음 격추는 핵전쟁이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표결 없이 끝난 회의에서 카멘스키는 서기장의 권한으로 철수를 결정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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